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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앞에서 화형식까지… '교과서 악마설'의 정체

 
‘하나의 유령이 멕시코를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멕시코의 여러 세력들, 현 야당과 교회와 언론과 학부모들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엉뚱하지만, 최근 멕시코 언론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정교과서를 둘러싸고 쏟아내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19세기에 쓰인 공산당 선언 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소환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산주의 바이러스를 주입할 것인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연일 이와 같은 자극적인 물음으로 호소하며, 해시태그를 달아 우려와 혐오와 공포를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이 호소와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일부 과격한 학부모들은 교과서를 불태우는 화형식을 마다치 않는다. 멕시코 전체 32개 주 가운데 6개 주에서는 주 정부가 직접 나서 주 헌법 재판소에 교과서 배포를 법적으로 금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이들에게 ‘공산주의 바이러스’를 주입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유령 또는 망령

학생들을 불모로 잡을 수 없으니 개학을 하고 나면 좀 잠잠해질까 싶었는데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개학을 했음에도 교과서 문제는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채 격돌하고 있다. 새 교과서 배포가 법적으로 금지된 주에서는 학생들이 헌 교과서로 학기를 시작했다. 

일파만파로 퍼진 ‘공산주의 바이러스’ 괴담은 ‘교과서 포비아’로 이어진다. 새 교과서에 손만 대도 공산주의라는 몹쓸 병에 걸려버릴 것 같은 공포가 멕시코 곳곳에 만연하다. 급기야 멕시코 어느 초등학교는 개학식에서 교과서 화형식을 단행했다. 새로 배급된 교과서들이 어린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운동장 한복판에서 활활 불타올랐다. 이쯤 되면 교과서 자체가 곧 ‘유령’ 혹은 ‘망령’이 아닐 수 없다. 휘발유를 끼얹은 교과서 상자에 쉬이 불이 붙지 않자 ‘교과서 악마설’까지 그 자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에서 공공의 적은 현 정부다. 지난 세기 무려 80년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여당이었던 현 야당과 국교에 가까운 가톨릭 교회와 ‘학부모 연합’이란 이름을 달고 등장한 시민단체가 새로 만들어진 교과서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다. 그리고 언론들은 앞다퉈 이들의 목소리를 실어 나른다. 

반대 목소리의 면면에 구체적 쟁점들이 드러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막론하고,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갖는 것은 역시나 공산주의 바이러스다. 교과서 배포를 막지 않으면, 교과서를 불태우지 않으면, 이 나라가 온통 공산주의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결국 파행을 맞을 것이란 명제들이 곳곳에 선연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쳐온 사람들은 ‘바이러스’란 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각계 전문가들이 교과서를 둘러 싸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을 내고 있지만 종국은 ‘공산주의 바이러스’에 묻히고 만다. 기-승-전-공산주의다. ‘공산주의 바이러스’라는 말 앞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정보들이 도무지 힘을 쓰지 못하고 묻혀버린다. 

이 시대에 공산주의라니, 아무래도 유령이거나 망령일 수밖에 없는 말이 무슨 힘을 얻어 멕시코 전역을 흔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멕시코는 이미 20세기 초 사회 정의를 내세워 식민 시기부터 이어진 대토지 지주를 제거하고 토지 균분과 공동토지를 축으로 삼았던 혁명을 일군 나라이지 않던가.

그리고 혁명 정신에 기반해 이를 제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기치를 건 ‘제도혁명당’이 20세기 내내 80년 동안 단 한 번의 정권 교체 없이 여당으로 군림했던 나라이지 않았던가. 작금 문제가 되고 있는 무상 교과서 역시 당시 혁명이 추구했던 무상교육의 한 축이 아니던가. 급진적이었던 혁명의 시기에도 언급되지 않았던 공산주의가 혁명의 흔적마저 사라진 지금 다시 부활하여 멕시코 거리 곳곳을 배회한다. 

신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연맹에 대한 서술 문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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